외딴 가로등과 부딪힌 밤 미약한 온기가 손끝으로 느껴졌을 때 외로움은 허수아비였네 너도 거기 서 있구나 나도 여기 서 있지 죽 뻗은 두팔은 안을 줄 모르고 서로의 기울어진 어깨 너머를 보네 드넓은 밭에 우린 마주보고 서서 접히지 앉는 팔로 참새들을 쫒네 말린 심장을 쪼아먹는 참새들 너 거기 있구나 나 여기 있어 우린 어정쩡하게 어깨 너머 그림자 짙게 덮힌 산만 그리워하고
매일 삐뚤어진 글씨로 너의 말을 받아쓴다 의미없는 말들에도 하나둘 써내려가면 지워지지 않는 의미가 적힌다 그래서 늘 빵점을 맞는다 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었으니까 공책을 덮으면 새빨간 소낙비에 젖어 흐느끼는 말들이 있다 받아쓰면 지우고 싶은 마음이 적힌다
기꺼이 얼어붙는 이에게 낙엽이 떨어지기 전 눈사람이 먼저 입김을 분다 어중간한 소맷자락을 당기면 늘어난 옷 틈새로 부는 눈보라 춥지않다 맨발로 겨울바다를 걸어왔으니 열병은 거꾸로 솟는 고드름 자꾸만 지쳐 녹아드는 건 뜨거운 열매로 심장을 만들었으니 춥지않을 것이다 입김은 봄을 노래하므로
나는 매일 두 번 불을 끕니다 아침 해가 창가로 난입하기 전 한 번 문을 나서기 전 뒤돌아 바라본 방 마르지 않은 걸레를 남겨두고 떠납니다 까마귀 울음이 휘몰아치는 밤을 향해 한 번 눈을 감으면 아픈 별들이 밝히는 백야 나는 왜 아직 혼미한 불을 끌어안고 있나요 배갯잎을 적시는 강물엔 물고기가 없고 끌어올리는 봄이 피위내는 시든 꽃 매일 하나의 불을 끄지 못하고 있습니다 침수된 새벽이 젖은 아침을 끌어올립니다
집어먹은 삶들이 너무 많다 소화하지 못한 시간들로 체한다 내 것이 아닌 마음들이 올라와 씹힌다 달지 않아도 충치를 기르고 있다 목구멍을 타고 무질서하게 태어나는 말들의 못질로 어금니가 아려온다 어금니로 잘게 으깬 유작들의 쓴맛을 핥으면 심장의 무게를 안다 허기가 채워질 때까지 통증을 음미하며 살아갈 것이다
예 손님,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모르겠습니다 굽이 많이 닳았습니다 언덕이 너무 높았나봅니다 모르겠습니다 밑창이 끊어졌습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합니까 모르지만 가야합니다 꽉 묶은 구두끈으로 버티고 있는 그를 위해 구두를 닦아주었습니다 발자국에 햇살이 다녀갈 것입니다 구두끈이 그대를 넘어뜨린다해도 광을 낸 구두는 빛을 잃지않을 것입니다
어둠이 빛보다 자주 아늑한 죄로 별이 남긴 유서가 은은히 비추는 창가를 향해 두손 모아 올리는 기도 나의 염원은 매마른 땅에 뿌리를 내려 두손이 열리면 태어난 것이 없어 불어오는 잔바람의 위로만이 찾아오고 멀리서 뜨겁게 태어나는 누군가의 기도에는 어떤 세계가 있을지 빈손을 비비며 생각해본다 참회하며 기도하는 자의 손바닥 사이로 팽창하는 우주 여린 별들이 그곳에서 자란다면 밤이 꼿꼿한 이들에게 비춰질까 아침을 일깨우는 촛불이 되어
뼈대가 앙상한 공사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안전 제일 표지판 그곳은 안전한가요 금이 간 벽돌 몇장으로 쌓은 벽 덜 마른 시멘트 바닥 나무판자로 덜컹이는 문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쓴 쥐가 문을 열고 나를 맞이한다 어서 이곳으로 대피하세요 뚫린 안전모를 쓰고 들어가 숨는다 틈새로 보이는 무너지는 세상들 나는, 안전할 수 있나요 쥐는 말없이 벽돌 뒤로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