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올랐고 오늘도 오르는계단은 손을 짚지 않아도 넘는 담넘는 건 올라가 다음을 보는 일다음은 또 다음이 되고여기는 저기가 되었다가 다시 여기가 되고머물다는 지나간다의 그림자계단은 딱 발자국 만큼 평지를 내어주어올라가는 일이 더 불안하지 않고몇걸음 내리막길을 걸어도 슬프지 않을 수 있다활짝 가슴을 펴 날아오르는 새의 품이 드넓다새에게도 계단이 있을까높이 날아가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요새의 부리가 예리하게 바람을 자른다반듯하게 재단된 바람이 날개옷을 입힌다더 높이 비행하는 새의 하늘은 평원이 된다깃털 몇개가 담벼락 앞에 선 내 앞에 내려앉는다고대 유물처럼 바랜 날개뼈에 깃털을 꽂는다팔을 벌리고 가슴을 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날아오른다 날아간다 날고 있다 날 수 있다가로막던 담벼락을 넘어간다또..
이곳입니다나의 한없이 여리고 미숙한 폐부그대 품에 안긴 송곳니로 나를 먹어요깊숙이 찌른 곳에서 수천 송이의붉은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꽃다발로 엮어 꽃밭을 달리십시오그리하면 당신은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사랑은 죽음 뒤에서도 영원한 것시든다 한들 자라나는 사랑은 멈출 수 없으니주머니 속 어금니로 나를 다독여주세요잘 소화해서 붉은 씨앗을 품으세요그대의 가장 단단한 곳에 두발 딛고서나무가 된다면 당신 또한 나를 바라봐 줄 건가요나의 혈관을 타고 꽃잎이 쇄도합니다기어코 심장까지 흘러들어와또다시 나는 폐부를 들키고 맙니다사계절이 지나면 또 피어나듯이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입니다불의 외로운 단거리 경주일등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바삐 결승점을 향해 달려갑니다불에게 꽃다발을 안겨줄 새 없이여린 시멘트처럼 굳어졌다가부르르 몸을 떨며 바닥으로 무너집니다경기는 끝났지만 향은 계속 달립니다천천히 아주 천천히흩어지는 걸음 남겨지는 다짐유서처럼 기록되는 포부재는 여전히 결승점에 남아그곳이 영광스런 종착지라 말하고향은 어디로 갈지 이정표를 찾고경미한 온기는 은메달처럼 빛이 나네더 오래 달렸다면 더 많이 떠돌겠지완주한 불에게 꽃다발을 안겨영원의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다면산발하는 향도 손을 잡고 갈 수 있다면길은 어디에나 있겠지
제가 살던 곳엔 돌이 많았습니다집 뒷편에는 바위산이 듬직하게 서 있습니다돌덩이로 쌓아올린 담이 있는 집풍파가 부수고 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입니다그래서인지 자주 갈라지는 돌부서지고 무너지며 구르고 흩어지며나는 돌멩이처럼 집밖을 나섭니다이리저리 치이다가도 여기저기 구르다보면시냇물을 지키는 조약돌은 부드럽게 손을 흔들고자갈은 예리하게 찌르며 말을 겁니다더 잘게 부서지면 모래가 되는데더 작아지면 먼지가 되는 걸까요돌멩이를 줍고 싶어졌습니다제각각의 돌멩이들의 손을 이어주고품에 안겨주며 돌덩이를 꿈꿉니다함께 바위산을 그리며 굳건해지기로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바늘구멍에 실 한가닥 넣는 일 침을 발라 예리하게 다듬으면 꼭 두 갈래로 나뉘는 끄트머리 잘 만들어진 미래는 잘 다듬어진 실에서 시작되나요 좁은 바늘구멍 너머 보이는 넓은 세상 얽혀있던 실을 풀어 발을 들입니다 당신과 내가 손가락으로 굳게 약속한 날도 잠들기 전 이불을 늘어뜨리던 불안의 밤도 모두 내가 단단히 꿰매고 싶던 시간들 보드라운 옷감으로 감추기도 한 민낯 수차례 입고 벗은 옷에 듬성듬성 자라난 실밥과 보풀은 머뭇거렸던 바느질이 피워낸 미련 가지치기하듯 잘라내면 보이는 틈 바늘은 나를 매달고 오늘을 찌릅니다 여전히 두 갈래인 실로 하나의 길을 가는 건 매 순간이 선택이기 때문이겠지요 좋은 옷이 될 수 있을까요 이 매듭을 짓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