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으로 베개 싸움을 하는가 봅니다모든 것을 재우려듯 내려 감싸주는 눈입니다깊숙이 남겨진 발자국들도 새살이 돋습니다고드름이 거꾸로 자란 이들도눈에 파묻혀 누군가의 품을 떠올리겠습니다이 모든 하얀 숨들을 받아들이면나는 어떤 모양의 눈사람이 될 수 있을지요누가 나의 눈코입과 팔을 만들어줄 것인지요자주 지나간 길엔 진갈색의 눈이 땅을 닮았습니다나는 아직 가야할 길이 많아 하얀 사람일까요나의 가장 추운 곳에 발자국을남기고 간 이들이 있지요자주 밟혀 흙투성이의 눈이 얼룩진 곳이 있지요유독 그런 땅에 봄은 늦잠을 잡니다녹을줄도 모르고 하얗게 덮일줄도 모르고
파도의 손톱이 쉼없이 육지를 긁습니다요란하게 모래알들을 할퀴고부드럽게 젖은 것들을 감싸는 손톱단단해진다는 건 손톱을 깎는 일조개껍질처럼 시간을 견고히 쌓는 일세상은 가려운 곳이 많은가 봅니다아름다움은 긁히고 어루만지는 것일까요나의 간질거림은 무엇일까요내 손톱은 통증도 울음도 없이나를 속이며 몰래 자라고 있습니다제각각으로 손끝에 쌓이는 시간으로무심코 긁으면 붉은 해변을 만들고가끔은, 아니 자주 여린 땅이 되곤 합니다손톱을 다듬어야 하겠습니다하얀 초승달을 손끝에 띄우는 마음으로생채기가 아닌 별들을 수놓는 시간이 되도록
걸어온 길엔 많은 절벽과 섬들이 있어모퉁이와 모서리들이 험난했는데차가운 몸을 덮은 이불에 펼쳐진굴곡진 산맥들은 아늑합니다우뚝 솟은 무릎 너머엔 초원일까요앞으로 몇번의 굽은 몸들을 넘을 수 있는지시선은 산맥을 올라가는데심장은 무릎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솜이불은 너무나도 많은 양들의 꿈 같아서잠에 들면 침묵하는 늑대가 걸어옵니다초원에 엎드린 나의 무릎엔 깊은 이빨 자국깨어나면 걷어찬 이불에 시린 무릎무릎 너머에 녹지않은 설원이 있습니다약간의 온기로 정상을 늑대의 부름을 쓰다듬으며새벽보다 깊은 기도로 다시 일어납니다이불을 개고 심장을 다독이며 무릎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