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모든 것들은 끝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끝에 도달하기 전에 끊어지다가도 이어짐을 반복한다. 깔끔하게 잘린 것들은 대체로 가장 예리한 날에 베여 미련이 없어 보인다. 막무가내의 힘으로 끊어진 또 어떤 것들은 거칠은 단면을 드러내며 서러워 한다.연필깎기로 돌려 예리하고 반듯하게 잘린 몽당연필. 구멍난 옷감을 덮기 위해 바늘구멍 속 좁은세상을 돌파해야 하는 잘린 실. 체하지 않고 잘 소화시키기 위해 작아지는 식재료들. 깨지면 이어붙여도 물이 새어 나오고야 마는 유리병. 불규칙적인 모양으로 잘게 부스러져 다시 모이지 않는 과자 부스러기.나는 끊어진 것들의 본래 이어지거나 합쳐진 과거의 모습들을 상상한다. 제를 지낸다. 통곡하지 않는다. 소리 내지 않는다. 그저 깨지고 잘리고 부서져야 했을 마음을 이..
매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풀들이 내 몸에서 자라난다. 잠을 자고 있으면 온몸에 씨앗이 심어지고, 밤의 달빛과 잡념을 영양분으로 삼아 자라난다. 대체로 아침에 눈을 뜨면 새싹으로 시작하지만, 어떤 날에는 풀숲에 둘러싸여 일어나곤 한다. 이름 따위는 붙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잡초라고 부르기는 싫었다. 내 몸과 마음에서 매일 자라는 것이니, 무성의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이 많을 때면 풀이 더 빠르게, 무성하게 자란다. 심할 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몸과 마음 구석구석 자라난 풀들을 자르고 베어낸다. 가위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단장하듯 자를 때도 있고, 면도기로 뿌리까지 자르는 심정으로 밀어 버리기도 한다. 씨앗을 뽑아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극심할 때는 밥을 먹지 않기도 했다...
단 한 번, 당신이 나를 위해 선물해준 연필 몇개가 고작이었지. 수년이 지나서야 연필을 깎아보았지. 연필깎이가 아닌 칼로 한 껍질씩 다듬으니 못생긴 연필이 나를 향해 날을 세웠네. 무슨 말을 써야 할까. 가장 예리한 심으로 아프지않게 쓰려면. 어떤 글을 써도 될까. 뭉툭한 심으로 면죄를 할 수 있는 그런 거. 이러다간 깎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무엇이든 써보았지. 다만, 하나도 지우지 않으면서. 처음엔 당신을 미워해야 하는 기억들을 사각사각 써내려 갔는데, 새로 연필을 깎으며 짧아질수록 좋은 일들만 쓰고 싶어지는 건 왜인건지. 너무 짧아서 연필을 잡을 수도 없어질 때서야 쓰는 걸 멈추었지. 고마웠다는 말은 끝내 한 번도 쓰지 않았네. 못쓴 건지, 안쓴 건지는 모르겠다. 써야 할까. 잠시나마 나를 살게 해..
희도야, 희도야. 벌써 너가 아픈지 3년이 넘었다. 아직도 네가 새벽에 장문으로 혈액암에 걸렸다고 문자를 보낸 순간이 잊혀지질 않아. 늘 그랬듯이 장난 중에 하나인 줄 알았지. 그런데 조금 더 심한 장난 그런 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너한테 답장을 보내기 전에도 수십 번을 생각했었어. 정말이면 어떡하지. 정말이어도 아니라는 척 장난스럽게 답장을 할까. 나는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늘 그랬듯 장난치지 말라며 답을 했었잖아. 그게 너한테 조금은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오히려 우린 친했으니까 그런 퉁명스런 답이 우리가 조금은 덜 슬플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을까. 자주 생각해. 많이 바빴던 나였고,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이기에, 병문안 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때였지. 그게 정말 마..
우리는 바다를 표현하면 푸른색으로 그리고, 노래하고, 글을 쓴다. 파랑은 단일적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기에 어쩌면 바다에게 어울리는 색일지도 모른다. 바다의 블루는 동경과 그리움과 사랑, 꿈과 희망, 우울과 사색 등 모든 감정의 색을 품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블루에서는 바다를 느낄 수 없었을까? 요즘의 나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연의 파랑에 빠져 있었다. 매일 비슷하게 돌아가는 삶, 더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내일, 어디서부턴가 정체되있는 것 같은 나. 재밌는 것을 봐도 재미있지 않았고, 슬퍼해야 할 때에도 슬퍼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여 감정을 상어에게 잡아먹혀 빼앗긴 듯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원인도 알 수 없이 이 우울이라는 파랑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