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일하다 그만 책상 위 물컵을 건드려 물을 쏟아버렸다. 서둘러 흥건해진 책상과 바닥을 닦으려다 끄트머리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시선을 빼앗겼다. 주변 사람들이 대신 바닥을 닦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이윽고 옆사람이 떨어지는 물마저 닦아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내 손에는 건조한 손수건이 있었다. 찰나의 조그마한 물방울이었지만 그것은 작은 세계의 소나기였고, 그 소나기에 몸과 마음을 적신 아주 잠깐의 내가 있었다. 누군가는 쓸데 없는 망상이라 생각하겠지만 이 소나기는 가뭄이 들었던 내게 홍수를 일으켰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범람하는 홍수에 잠수를 했다. 거칠게 흘러가는 홍수속엔 익사하고 있는 수많은 내가 있었다. 그들의 눈밑엔 일련번호 같은 무언가가 쓰여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떤 날의 나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