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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수박이 과일가게를 지키고 있다
두드리면 맛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허술하게 메아리 치는 수박을 샀다
매미가 늦여름을 쫒던 울음을 닮았다

나는 어느 곳을 두드리면 싱그러운 소리가 날까

검정색 줄무늬가 너무나 선명해서 지우고 싶었다
철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있는 힘껏 닦았다
두꺼운 껍질에 깊이 새겨진 문신이 잘지워지지 않는다
검은 새벽들을 수놓은 수박의 시간은 달다

나의 지울 수 없는 흉터도 단맛을 낼 수 있을까

새빨간 과육이 드러날 때까지 씻었다
아무도 내게 왜 철수세미와 세제로 닦았는지 묻지 않는다
가려보아도 드러나는 것은 선명해져 갈 뿐이다
수박을 씻는 시간에도 무늬는 더 짙어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씻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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