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과 망각

도망치는 것이 부끄러웠다
맞닥뜨리는 어떤 것들은 나에게
해 볼 만한 것인지 답을 주지 않기에
도망쳐도 되는지를 말해주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는 것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나는 이미 적지 않은
실패를 맞이하고 난 뒤였다

실패에 움츠려들면 좁아진 어깨너머
필연적으로 망각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아직 도망갈 방법이 있다고, 잊어버리자고
그럴 때면 망각에게 묻는다
잊으면 없던 것이 되냐고, 다시 할 수 있냐고

망각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도망치더라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한가득 울어도 장마가 내리지 않듯
아픔이 홀로 간직해야 하듯 고독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선 모든 고통을 견뎌낸
어제의 내가 있어야 한다고

어제는 실패했을지언정
더 나아질 내일의 내가 있을 테니
아픔을 잊더라도 어제의 나마저 버리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