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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처럼 옆으로 걸었던 날이 있었다
똑바로 걷지 못하였으므로 옆으로 걸어 앞으로 갔다
모로 걸어도 갈 수 있다면 그만이었던 날이다
사람이었을 때는 발이 두개였으나
옆으로 걸었을 땐 많은 발이 필요했다
두발로 지탱할 수 없던 날들이었으므로
일주일에 한 번이면 새 양말을 신고
사뿐히 쾌적하게 걸었을 내가
며칠동안 하루를 걷듯이 지냈던 시간은
세탁기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했다
세탁기 안으로 웅크려 들어갔던 날엔
어지러운 세상과 좁은 방에 숨이 막혔다
옷감에는 세제를 넣어 빨래를 하는데
사람에게는 무엇을 넣어야 하는가
그런 하루를 걷기에 많은 발걸음이 필요했으므로
세탁하면 필요없을 새 양말을 무더기로 샀다
얼룩진 발을 한 번도 세탁한 적 없는 새 양말로 가렸다
두발로 다시 똑바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지난 날들을 세탁하는 데 꼬박 삼일이 걸렸다
건조대에 널고 널어도 양말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때로는 한걸음에도 많은 발이 필요할 것이다
비스듬히 걷던 날에도 느리게 걷던 날에도
다시 일어날 것을 의심치 않았던 두발의 믿음이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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