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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을 부여잡고
돌아와 냉장고의 먹다 남은 음료를 마신다.
이제 냉장고엔 아무것도 없다.
그 흔한 물도, 과일도, 그 무엇도.
닫힌 냉장고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래, 이건 지금의 나다. 나일 것이다.
신선하고 맛있는 야채들과 과일들,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들로 가득한 것처럼
나 또한 밝고 행복한 무언가로 채워지길
바라왔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듯 악취가 나
버리고 버려져 공허함만이 자릴 잡고 있다.
채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쉽사리 그것을 마음에 넣지 못한다.
나의 냉장고는 유독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마치 방치된 행복이 금세 잊혀 버리는 것처럼.
그래도 내일은 과일가게를 들려야겠다.
비록 오렌지 하나이겠지만
조금은 나를 웃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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