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운 에세이

정당하지 않는 울음

화운(신준호) 2022. 9. 1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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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일하다 그만 책상 위 물컵을 건드려 물을 쏟아버렸다. 서둘러 흥건해진 책상과 바닥을 닦으려다 끄트머리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시선을 빼앗겼다. 주변 사람들이 대신 바닥을 닦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이윽고 옆사람이 떨어지는 물마저 닦아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내 손에는 건조한 손수건이 있었다. 찰나의 조그마한 물방울이었지만 그것은 작은 세계의 소나기였고, 그 소나기에 몸과 마음을 적신 아주 잠깐의 내가 있었다.
누군가는 쓸데 없는 망상이라 생각하겠지만 이 소나기는 가뭄이 들었던 내게 홍수를 일으켰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범람하는 홍수에 잠수를 했다.
거칠게 흘러가는 홍수속엔 익사하고 있는 수많은 내가 있었다. 그들의 눈밑엔 일련번호 같은 무언가가 쓰여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떤 날의 나를 기록한 꼬리표 같은 번호들. 이들의 눈가를 어루만지니 잊어야 했던 공허의 날들이 피라니아처럼 달려와 내 몸을 물어 뜯었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던, 울먼 안되는 나날들, 그때의 내가 파도에 휩쓸리며 나를 몰아쳤다. 왜 그때 울지 않았냐고, 울었어야 했다고 다그치는 손길들.
내게 있어 울음은 무엇일까. 부끄럽고 창피해서 감춰야 하는 것일까. 이 나약함이 누군가에겐 약점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달아난 비겁한 모습일까. 나의 처절했던 마지막 울음은 이제는 심연에 가라앉은 그녀와의 끝자락 앞에서였다. 그녀는 비참했던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손길 한 번 내어주지 않았었지. 그 뒤로 울지 않았다. 울음은 온전히 홀로 간직해야만 했던 것이었고,  그 누구도 어루만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약함은 곧 진실됨이고, 진실됨에 순수한 내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약해지면 안되는 것이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이니 울지 않아야 했다. 내 울음은 정당하지 못한 것일까. 홍수가 지나간 뒤 심연에 가라앉은 나는 조금도 수면 위로 올라올 줄을 모르고 모래바닥에 누웠다. 여기선 울어도 상관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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