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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새집으로 이사할 때는 공석이 많았다.
이전의 나의 삶에 자리 잡지 않았던 공간들이
좁은 방 사이사이에서 설렘으로 나를 마주했다.
빈자리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손님으로 찾아와
앉았고 이내 점점 공석이 만석이 되어 갔다.

처음엔 이 낯섦이 좋았다.
새 출발을 축하하려는 듯이 모여든 이들의 이질감은
방 안에서 작은 모험을 나서게 하듯 신선했다.
이 모험이 오래가길 바랐던 내가 저지른 잘못.
바로 늘 내 옆에 있어주던 낡은 것들을 버려버린 것.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세 손님이 찾아와 버린 것.

문밖을 나서면 온통 날이 선 쇠붙이 같은 시선들이
내 온몸을 차갑게 베어버리기 일쑤인 세상인데.
무게도 소리조차도 없어도 온기가 있던 그들만이
방안에 들어서면 생채기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는데.
그들의 따스한 자리엔 어느샌가 쇠붙이가 앉아있다.

이제는 나의 방엔 아무도 없다. 그들은 버려졌다.
내가 살아가려면 다시 이 쇠붙이들과 친해져야겠지.
익숙함이 지루함으로 느껴질 때,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그때 알았더라면 만석이 된 이 빈방은 여전히 따스했을까.
날이 선 빈방의 손님들이 내게 질책하고 있었고
냉기로 만석이 된 자리의 먼지만 털어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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